http://changgo.com/past/story/20000512/story.htm

일본에선 그리 크게 대접받지 않는 듯하지만 한국엔 팬이 많은 피아니스트 유키 쿠라모토가 2번에 걸쳐 내한공연을 했을 때, 그리고 저 유명한 퓨전재즈그룹 T-Square마저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나처럼 고급문화 혹은 세련된 문화에 대한 적쟎은 허영기 혹은 컴플렉스를 가진자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한번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류이치 사카모토는 한국에서 공연 안하나?'
영화음악가로서의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에 대해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식상한 주제가 되었을 만큼 그에 대한 영화음악 매니아들의 관심과 집착은 2000년 현재 이미 '광증'의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 이렇다할 프로모션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럴까? 일본의 대중음악가로서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카리스마가 실제이상으로 과대평가된 탓일까. 아니면 동서양을 넘나들며 어느 현대의 대중음악가보다도 자신만의 스타일과 패션을 흔들림 없이 균형있게 유지하는 그에 대한 정당한 경외감일까.
어쨌든 문제적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4월 28일 드디어 한국 공연을 하고 갔다.


BTTB
1.Energy Flow 2. Put Your Hands Up - Piano Version 3. Railroad Man - Piano Version 4. Opus 5. Sonatine
6. Intermezzo 7. Lorenz And Watson 8. Choral No.1 9. Choral No.2 10. Bachata 11. Chanson 12. Prelude 13. Uetax 14. Aqua 15. Tong Poo


새 앨범 [Back to the basic]의 프로모션을 겸한 이 공연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특유의 정적이면서도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무대를 가꿔 보여주었다.
세 개의 건반악기가 나란히 놓여져 있어 서로 다른 질감의 건반연주가 펼쳐질 것임을 예감케 하는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세팅부터가 그다웠다. 마치 세 개의 방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기호학적 구조의 가옥 속으로 그를 따라 들어가게 될 것 같은 분위기…
첫 번째 방은 신디사이저와 샘플링, 그리고 디제잉을 통해 이질적인 사운드들을 입체적으로 조화시키는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일본의 전통소리와 심장박동을 연상케하는 비트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바람처럼 들려오는 어쿠스틱 피아노 소리.
마치 연금술사처럼 섬세하게 소리의 잡동사니들을 가르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그의 손끝 하나하나에 청중들의 시선은 모아졌고 장내에는 평온하지만 숨죽이는 긴장감이 지속된다. 'Spinning'이라 이름 붙여진 이 첫 번째 스테이지는 이후에 펼쳐질 류이치 사카모토만의 고요와 열정의 어쿠스틱 피아노 감상실로 들어가기 위한 매우 까다로운 통과의례마냥 15분이 넘게 지속되었다.
마치 20년전 신디사이저 3대로 편성한 그룹 '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 전자음악 실험의 마력을 보여주던 현란한 사운드의 세계를 더 깊이 심화시킨 듯한 무대였다.
그리고 무대 백스크린에는(류이치 사카모토의 공연에는 언제나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영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희미하고 심플한 단어와 도형의 다음과 같은 나열이 음악 레퍼터리와는 무관하게 두시간의 공연을 채우며 하나의 패러그래프를 완성해가며 그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위의 링크로 접속하시면, 공연당시에 스크린에 나왔던 내용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