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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투명한 음색변화 일본적 선율 선봬

장일범〈음악평론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밤 10시에 KBS-FM에선 ‘영화음악실’이라는 방송을 했는데 매일 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나는 그때 처음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곡은 단순한 듯하지만 한 번 들 은 후에?몸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당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자주 듣기는 어려웠다. 아마 사카모토가 일본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에 대학 생이 되고 나서 베르나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면서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류이치 사카모토?이름을 다시 만났을 때, 난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영화음악 <`마지막 황제>는 엄청난 스케 일에 섬세함까지 갖춘 위대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4월 28일 금요일 예술의 전당에서 드디어 류이치 사카모토의 공연 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듯한 가벼운 흥분이 내겐 있었다. 공연기획사 측으로부터 일본에서 대단히 많은 장 비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어떤 공연 모습을 보여줄까도 매 우 궁금했다.

공연장엔 정말 많은 청중들이 와 있었다. 특히 우리 나라의 젊은 청중 에게 사카모토라는 존재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존재였 다. 빗장을 걸어놓았던 일본 음악에 대한 젊은층의 애정이 상당히 뜨 겁다는 것을 느낄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온 일본인들도 상당수 눈에 띠었다.

사카모토는 이날 은근슬쩍 등장하면서 들려준 첫곡에서부터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실험적이거나 또는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들을 위주로 솔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사카모토의 이런 음악이 매력적으로 다가 오지는 않았다. 그건 앙드레 가뇽이나 조지 윈스턴, 유키 쿠라모토 류 의 뉴에이지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음반으로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과 정신상태가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그저 그런 것에 대한 시큰둥 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마지막 부분에서 도드라졌다. 영화 <철도원>의 주제곡에서부터 <`마지막 황제> 주제곡, 앙코르에서 들려준 <메리 크 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그리고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시절 의 음악까지 그의 음악의 정수가 홀에 울려퍼졌을 때 청중들은 열광했 다. 특히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서의 투명한 음색 변화 와 강약 조절은 사카모토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입증해주었다.

사카모토 음악에는 여러 방향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그 가 들려준 음악들은 일본적인 선율과 화성의 국제화라고도 할 수 있 다. 그의 공연을 보면서 왜 우리에게는 사카모토같이 모국의 음악언어 를 국제화시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곡가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이번 사카모토의 공연에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을 무대 위에서 보 여주었다. 특별히 설치한 조명과 슬라이드를 통한 메시지 전달, 그리고 프리페어드 피아노에 골프공을 실수로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행 동, 어눌한 듯한 말투 등 모두 철저히 계산된, 준비된 공연이었다. 이 날의 무대를 보면서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라고는 하지만 어설 픈 시도들만 하다가 그치고 마는 한국 공연관계자들에게 자극이 되고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