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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ichi Sakamoto CONCERT IN SEOUL

'완벽한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연주'

1977년,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첫 장편 소설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군조"신인문학상과 제75회 "아쿠다가와 상"을 석권했다. 1978년 사카모토 류이치는 "YMO", 즉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1979년 무라카미 하루키늬 첫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향유하던 문화코드는 "일본식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해되었지만 나중에 "일본식 포스트 실존주의"로 드러났다. 1979년, 한국에서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젊은 날의 초상"의 출간은 1981년 이었다.
지난 4월28일,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의 공연에, 사카모토를 그저 "영화음악가"정도로 생각하고 공연장을 찾은 청중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전위예술가"라는 프로그램 노트가 있어서 그런 청중들의 충격을 상당히 막아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의 음악을 "진정한 전위예술"로 뭉뚱그려 부르기에는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너무나 컸다. 게다가 현대 음악적인 코드를 반영한 작품들도 엄격히 말해 "전위"는 아니었다.
사카모토의 영어 인터뷰를 녹음한,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이 점점 커지며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긴 머리를 뒤로 길게 묶은 사카모토는 어둠속에 등장해 LP, CD, DAT, 오디오, 테이프등을 섞어 틀며 "작품"을 만들어갔다. 대중음악의 "테크노"장르에서 DJ의 믹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사카모토 자신이 "테크노"의 선구자가 아니었던가. 즉흥적으로 틀어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작품은 완벽히 짜여진 구도를 유지했다. 말러의 작품. 지구촌 어딘가의 민속음악. 스님들의 독경같은 소리들이 섞이다가 독일어 연설이 점차 커지며 다른 소리들을 잠재우고 사그러져갔다. 사카모토는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아 "Energy Flow"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 연주에 한해서는 "피아니스트"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의 연주는 완벽하고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모든 장르를 향해 열린 시각으로

잘 알려진 대로 사카모토는 도쿄 국립 예대에서 작곡과 민속음악, 전자음악을 공부했다. 그런 그가 "YMO"를 통해 대중음악에 투신할만큼 자유로웠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일이다. 물론 우리에겐 사카모토가 존경에 마지않는 백남준이 있다. 이런 경력들을 바탕으로 그는 다장르 복합의 귀재가 되었다.
공연에서 선보인 "Prepared Piano"는 역시 완벽히 "준비된"것이었고,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 연주된 "1919", 또한 세 번째 앙코르 곡으로 연주된 YMO시절의 "Tong poo"와 음악적으로 상통했다. "1919"는 전자식 "전자식 피아노롤"기능을 갖춘 야마하 오토메틱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었는데, 테크노와 미니멀리즘이 복합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Prepared Piano"개념은 존 케이지가 도입한 것이지만 사카모토는 이를 완전히 자신의 음악풍에 녹여넣었던 것이다. 사실 일본인들은 바닥부터 창조하는 것에는 익숙치 않다. 철저히 모방해 완벽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해체하고 또 다른 창조를 낳는다. 맨 위의 언급에서 두 무라카미의 작업과 사카모토의 작업에 연관성을 찾는 것을 무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히피 문화 코드"가 일본의 위장에 의해 소화되어 예술의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작가들은 젊은 날의 방황, 마약, 변태 성욕까지도 실존을 통해 풀어냈다. 사카모토는 영화음악가이기 이전에 모든 장르를 향한 열린 시각을 갖고, 그것을 어떻게 복합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온 작곡가임에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곤 합니다. 제 자신의 곡중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느냐고요. 저는 제 곡들을 자식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자식을 좋아한다고 집어서 얘기할 수 없습니다." 라며 앙코르 첫 번째 곡인 "Lost Child"를 연주하던 사카모토, 그는 공연장에서 선보인 "마지막 황제", "철도원"등의 "작품으로서의 존재감"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 "용기"를 지녔던 것이다. 사카모토는 "한국공연은 최근 몇 년 내에 가진 공연 중 자신의 컨디션도, 청중들도 최고였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어느 정도 매너리즘에 빠진 그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청중들 앞에 서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 객석 글.박정준 기자/ 사진.김윤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