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rumental Field

끊임없는 실험 정신으로 세계 시장 정복한 멀티 엔터테이너 류이치 사카모토, 베스트 성격의 새 솔로 앨범 발매

RYUICHI SAKAMOTO

최근 일본 대중 음악의 유입을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물론 형평성의 원칙에 입각한다면 일본 음악이 우리 시장에 들어온다 해서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어차피 우리의 음악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인데 영어권이나 유럽쪽의 음악이 우리 시장에서 판을 치는 것은 괜찮고 유독 일본의 노래가 우리 입을 통해 불려지는 것은 안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더군다나 일본 문화 유입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기성세대들조차도 쉽사리 일본에서 들여온 국적 불명의 외래어를 사용하고 왜색 짙은 트로트를 불러제끼는 마당에 '일본 노래는 무조건 안 돼'하는 식의 논리는 더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개방적 사고는 아직까진 매우 순진한, 위험하기조차 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한.일 양국이 지니고 있는,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는 불행한 과거사 때문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 때문에 일본 문화, 특히 그중에서도 영화나 대중 가요같이 국민 정서에 직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유입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왔고, 경직되었지만 모순된 원칙 탓에 정작 일본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단지 미국에서 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견고한 방어망을 뚫고 서울 시내에 선보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지금 우리 가요계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시장에 알려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 노래를 그대로 베껴다가 자기 노래로 둔갑시켜 히트시키는가 하면 우리 시장에만 안주해 경쟁력을 상실한 탓에 이제는 문호 개방을 하려 해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클래식 음악 등 일부 분야에서는 우리가 일본보다도 낫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네들에 비해 현저하게 뒤져 있는 분야가 바로 영화 음악과 일반 가요 등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에 비해 한 발 앞서 세계 수준에 올라 있는 영화 음악-혹은 인스트루멘틀-분야에서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인물이 바로 여기 소개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와 기타로이다(기타로는 영화 음악은 아니지만 NHK 시리즈물 <실크 로드>로 그 이름을 날린 바 있다).
동양적 색채가 진하게 배어나는 음악을 하는 기타로와 달리 류이치 사카모토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철저하게 서구화된 팝 인스트루멘틀에 월드 뮤직을 접목시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 인물이다.
세계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그가 음악계에, 아니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87년 작품으로 거장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의 음악을 담당하면서부터였다.
<마지막 황제>의 오리지널 스코어로 인해 골든 글로브, 그래미,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일본의 엔니오 모리꼬네'란 별칭을 얻은 그는 이어 키아누리브스가 주연한 <리틀 부다(Little Buddha)>의 음악을 만들어 냈고 데이빗 보위와 함께 의 음악 작업을 하는가 하면 이기 팝(Iggy Pop)이나 데이빗 번(David Byrne)과도 함께 하며 거장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런 그가 올해 베스트 앨범의 성격을 지닌 새 작품 1996를 뉴욕의 월드뮤직과 사운드트랙 전문 레이블 <밀란엔터테인먼트(Milan Entertainment)>를 통해 내 놓고 월드 투어에 나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2년만에 내놓은 솔로 앨범이기도 한데 지난 1984년 내놓았던 앨범 Illustarted musical encyclopedia에 담겨 있던 작품 A tribute to n.j.p.를 다시 수록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그것은 이 작품이 그와 오랜 친분이 있기도 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에게 바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앨범엔 그의 과거 히트작들뿐 아니라 신곡도 담겨 있어 그의 과거와 현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 바탕으로 월드 뮤직 접목

그의 음악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미묘한 성격의 것이다. 물론 그 바탕은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작품들은 클래식적 요소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는 그가 정규 클래식 교육 기관에서 석사학위까지 따낸 엘리트라는데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특히나 이번 앨범 1996처럼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의 피아노3중주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피아노와 키보드 연주자이기도 한 그의 클래식적 재능만이 아니었다.
클래식에 다양한 이색 재료들, 즉 월드 뮤직이나, 재즈 같은 양념을 추가해 맛을 낸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이다. 위에서 말한 기타로가 철저히 일본적인, 혹은 동양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사카모토는 보다 보편적인 음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음악 세계.
"저는 한 가지 형태의 음악만을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음악들을 혼합해 음악을 만들어내죠. 저는 민속 음악을 깊이 연구했고 제게있어 가장 큰 과제 혹은 도전은 어떻게 하면 다양한 형태의 음악들을 혼합해 새로운 음악으로 창출해내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가 말하고 있듯 힙합이나 얼터너티브 등 최근의 음악 사조들에까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듯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또 다시 그의 음악으로 용해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가 클래식 음악을 버리고 현재와 같은 장르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이렇다.
"저는 처음엔 피에르 불레(Pierre Boulez), 존 케이지(John Cage), 테리라일리(Terry Riley) 같은 현대 음악에 빠져 있었죠. 하지만 곧 그 규모가 너무 작은데 실망하게 됐죠. 이런 쪽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아마도 일본엔 1만 명도 채 안됐을 거예요. 그래서 전 그런 현실에 화가 났죠. 전 사람들과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었거든요. 그게 바로 제가 팝 음악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지요. 그래서 여러 다른 형태의 록이나 펑크(Funk), 펑크 (Punk)를 듣게 되었고 거기서 탠저린드림(Tangerine Dream)이나 크라프트 베르크 등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가 팝 음악을 택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이유. 그건 나이가 먹은 다음엔 팝 스타가 되긴 힘들기 때문에 젊었을 때 팝 음악을 해야 하겠다는 것 때문이라고.
"제 나이가 70이 되어서도 음악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나이에 팝 스타가 될 수는 없거든요."
일본인이면서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닌, 세계의 스타 류이치 사카모토. 작곡가에서 출발해 편곡자, 프로듀서 등 꾸준히 영역을 넓혀온 그의 활동은 그 자신의 의지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 정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부럽기만한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되어선 안될 것이다.

글. 원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