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

새 앨범 Discord 홍보차 내한한 류이치 사카모토와 1월 6일 인터뷰를 가졌다. '일본의 엔니오 모리꼬네'로 불리는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글 원용민

-한국에는 이번이 처음인가요?
아니요. 두 번쨉니다. 15년 전에 왔었는데 그 때는 일본 잡지에 실리는 사진 촬영차 왔었고 저 개인적으로는 관광에 목적이 있었어요. 예전부터 한국 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그 당시에 벌써 '사물놀이' 팀과 리더 김덕수 씨를 알고 있었거든요. 또 저는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음악적,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여러 가지를 둘러보고 싶었지요.
-신상에 관한 질문을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요?
글쎄요...음악인으로서의 저의 삶은 당연하게도 복잡합니다(웃음). 아이들이 넷 있는데 셋은 뉴욕에 살고 하나는 일본에 있습니다. 그게 다예요(웃음).
-현재 뉴욕에 살고 계시는데 일본은 자주 방문합니까?
8년째 살고 있는데 적어도 1년에 한 두 차례는 방문합니다.
-프로듀서, 작곡가, 배우, 모델 등 다방면에서 활동중인데 가장 비중을 두는 쪽은?
작곡이죠. 때때로 사람들은 제게 왜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하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분야를 막론하고 재능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좋아요. 만약 제게 그런 사람들과 일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그것이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마지막 황제>의 감독), 안토니오 미로(디자이너) 등등 말이죠.(이 때 옆에 있던 매니저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베르톨루치 등 감독들은 류이치에게 먼저 음악을 의뢰한 것이 아니라 연기자로서 먼저 섭외를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음악을 맡게 됐다고).
-'96년 낸 베스트 앨범 성격의 1996도 있었지만 실제 스튜디오 앨범은 '94년의 Sweet revenge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Sweet revenge는 테크노, 힙 합등 다양한 장르와 전자적 사운드가 가미되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상당히 클래시컬한 것 같아요. 방향 선회를 한 것인가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인지요?
저는 항상 스타일을 바꿉니다(웃음). 하지만 저는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 후에 팝 음악을 배우고 공부했어요. 저는 뭐든지 다 해보고 싶어요. 심지어 현재는 오페라 작법을 공부하고 있지요. 하지만 정통적인 의미의 오페라는 아니고 테크노에서부터, 글쎄 신(新)낭만주의라 할까요...하여간 여러 가지 것들을 혼합한 형태가 될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할 거라는 점도 이해는 합니다. '도대체 사카모토의 정체가 뭐냐?'고 말이죠. 저는 항상 그런 문제를 지니고 있었어요(웃음).
(다시 매니저의 설명에 의하면 Sweet revenge와 1996 앨범 중간에 Smoochy라는 앨범을 1995년에 발매했었다고 한다. 그것은 보다 팝적인 감각 위에 클래식을 혼합시킨 형태의 것이었으며 따라서 음악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고). 저는 항상 여러가지 것들을 결합하고는 하죠. 이를테면 에스닉 음악과 팝과 클래식을 섞는 등등말이죠. 1996 앨범의 경우도 표면적으로 보면 피아노 3중주로 연주하는 등 클래식 스타일이지만 음악은 팝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요. 그리고 Sweet revenge나 Smoochy같은 경우는 팝적인 요소가 강했지요. 힙 합적인 요소도 있었구요. 저는 항상 한 가지가 있으면 거기에 다른 것을 가져다가 혼합하곤 합니다.
-그럼 다음 앨범에서도 다른 장르를 시도해 보시겠군요?
음(고개를 갸우뚱 거리며)...물론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걸 지금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는 모르겠군요. 어느 누구도 아직 하지 않는 스타일이니까요.
-다음 앨범에 오페라가 실릴지도 아직 모르겠네요?
아니요. 오페라가 발표되기 전에 저의 다음 솔로 앨범이 나올 겁니다.
-이번 앨범이 아프리카의 기아 참상을 보고 작업했다고 하고, 또 수익금이 브라이언 이노가 운영하는 자선 단체 에 전액 기부된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설명을 부탁합니다. 언제부터 그런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이번 앨범은 1997년 1월에 가진 투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어요. 원래 생각은 그동안 작곡했던 영화 음악을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재편곡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른 후, 그러니까 리허설이 시작되기 거의 한 달 전 쯤까지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제가 그걸 다시 편곡할 게 아니라 완전히 다시 음악을 작곡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투어를 위해 한 시간짜리 관현악곡을 말이죠. 꿈에서 깨자 마자 메모를 해 놓고는 바로 스튜디오로 내려가서 작곡을 시작했죠. 하지만 정작 작곡을 하기 위해선 구상이 필요했는데 그 이유는 그저 몇 분짜리 팝 송을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짜리 관현악곡이기 때문이죠. 구체적인 청사진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마음 속으로 한 시간짜리 음악을 만들려면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죠. 그 때 바로 아프리카 자이르와 부르키나파소의 참상에 대한 뉴스가 TV에서 나오더군요. 그래서 그런 위기 상황을 모티브로 삼기로 하고 네 개의 주제어 즉, '슬픔(Grief)', '분노(Anger)', '기원(Prayer)', '구원(Salvation)'을 생각해냈지요. 그게 바로 꿈을 꾼 날 아침이었고 그 다음 날 작곡을 시작했죠. 그래서 작곡을 완전히 마친 것이 바로 연습에 들어가기로 한 날 아침이었어요(웃음). 그리고 브라이언 이노는 약 13년 전 쯤에 만났어요. 그리고 나서 도쿄나 뉴욕등지에서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린 서로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우린 함께 만나기도 했고 브라이언 이노에게 제 앨범의 프로듀스를 부탁하기도 했어요. 아직 실현이 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브라이언 이노가 제 앨범을 프로듀스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당연히 저는 브라이언 이노가 자선단체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브라이언이 제게 그 단체에 뭔가 도움을 달라고 부탁을 해왔죠. 그래서 이번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했 죠.
-앨범 제목이 Discord인데요, Untitled 01은 뭐죠.
아, discord는 앨범 제목이고요, 거기 실린 관현악곡인 이번 작품의 제목이 'Untitled o1'입니다.
-Discord는 어떤 의미죠?
(매니저가 답변)이번 앨범이 오디오만 제공되는 것이 아니고 CD Extra로 디지털 화면도 포함이 포함되어 있어요. 즉 두 가지의 다른 요소, 풀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디지털은 discord(불협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합해서 하나로 만들었으니 'discord'로 짓는게 어떠냐고 제가 물었고 사카모토가 거기에 동의했어요.
(사카모토가 답변)이 작품은 음악 그 자체로도 'discord'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작품 자체가 오케스트라, 피아노, 기타, 그리고 DJ라는 이질적 요소를 위해 만들어진 협주곡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질적인 장르들을 혼합했기 때문에 'discord'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음악과 영상, 그리고 뉴 미디어라는 면에서 보면 그것 또한 'discord'예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라면?
글쎄요...바르셀로나 올림픽 음악을 만들었고 개막식에서 지휘를 했는데 당시 저는 저 자신 아주 잘 했다고 흐뭇해 하고 있었죠. 그래서 선물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들이 제 음악이 가장 좋았고 잘 했다고 말하면서 선물을 사서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지중해쪽의 문화를 음악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얘길 하더군요.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일본인이면서도 여러 나라 사람과 많이 작업을 하고 코스모폴리타니즘 (Cosmopolitanism)적인 요소가 보이는데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지요? 아티스트로서 국적이란 것을 의식하는지요?
저는 아티스트들은 어떤 나라건 간에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Outlaw), 즉 국외자 (Outsider)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백남준씨만 해도 한국인이지만 '세계인'이라고 해야겠죠.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간에 그의 음악을 듣고 즐기고 있거든요. 제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간에 제 음악을 즐길수 있고 저 또한 일본 사람들만을 위해 곡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 같은 곳에 관한 뉴스를 보면 그 곳 사람들의 생활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예요. 비록 그 곳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라도 저는 그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만들지요.
-YMO(Yellow Magic Orchestra)로 잘 알려졌고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함께 테크노의 창시자로 불리는데 처음 테크노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최근의 테크노 음악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YMO를 결성하기 전부터 저는 크라프트베르크를 좋아했어요.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을 듣고 나서부터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다른 멤버들에게 크라프트베르크를 소개하는 입장이었어고 우리는 모두 그들의 대단한 팬이 되었지요. 그래서 '일본식 크라프트베르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건 비록 우리가 크라프트베르크를 존경하긴 했지만 그들의 음악은 독일식이었고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거든요. 우리는 크라프트베르크 음악에 동양적인 것을 가미해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미국 사회에 잘못 인식되어 있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이미지, 즉 예를 들면 항상 일본인은 아시아 지역 모든 국가들의 사람들을 혼합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나오는데-안경끼고 카메라를 메고 말이죠-그런 이미지를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기본으로 깔고 혼합했죠. 1990년대 초부터 특히 유럽 등지에 테크노 밴드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최근까지도 저는 테크노 음악, '90년대 테크노 음악들을 좋아하지 않았 어요. 왜냐하면 테크노 음악이 알맹이가 없는 듯 보였거든요. 그냥 비트만 있을 뿐이구요. 하지만 최근에, 아마도 1년 전 쯤부터 다시 테크노 음악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사실 저는 예전에 드럼 앤 베이스를 먼저 들었고 그 다음에 테크노를 듣기 시작했는데 어느 분야나 재능있는 사람들보다는 변죽을 때리는사람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잖아요. 테크노도 마찬가지지요.
-요즘 듣는 음악은요?
독일 그룹인데 오벌(Oval)이라는 20대 초반의 2인조 그룹이 있어요. 비트가 없는 음악인데 포스트 드럼 앤 베이스(Post Drum And Bass) 혹은 포스트 테크노(Post techno) 즉, 더 나중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음악이고 제 솔로 앨범에 그런 사운드를 수용할까 생각중이예요. 제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해서 말이죠. 아직 그런 사운드를 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아요. 빠른 스피드의 그루브는 있지만 비트는 없는 특이한 음악이요.
-백남준씨에 바치는 노래 Tribute to n.j.p.를 만든 적도 있는데 백남준씨와는 친분관계가 있나요?
예. 뉴욕에서 몇 번 만나고 그의 오두막을 방문하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그가 도쿄에서 1983년 쯤인가 굉장히 큰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만난 적이 있지요. 저는 1960년대 부터 그의 팬이었어요. 그리고 그 분은 저를 만나기 전에 벌써 제 음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서로 알기도 전에 악수를 청하면서 그가 '아, 이렇게 먼데서 친구가 찾아오다니'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더군요(웃음). 저는 미술 잡지에서 그의 작품과 그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그는 상당히 날씬했었고 상당히 급진적인 분이었어요.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 창밖으로 던져버렸다는 일화도 알고 계시죠?
-일본 대중음악이 금지되어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 또 그 점에 대해선 알고 있는지요?
정부와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 다르지요. 저는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해요. 왜 정부가 일본 음악을 금지하는지도 알고 있구요.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기 시작했어요. 통신 수단의 발달 때문이죠. 위성의 발달과 요즘엔 인터넷 때문에 국가간의 장벽이 없어진 상태죠. 따라서 조만간,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법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양국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 할 겁니다. 서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보다 남북한 간의 관계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북한의 기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는 아주 슬픈 생각이 드는데 이런 상황이 되는 것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북한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런 장벽이 무너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은 미니멀리즘에 영향 받아 한국 음악을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요?
예 물론 알아요. 한국 음악을 들어보았는데 한국 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티스트 이름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많은 한국 음악 CD를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죠.
-양국 관계를 생각한다면 한국 리듬을 차용해 음악을 만든다든지 하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대학에서 민족 음악(Ethnic Music)을 공부했고 저의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한 지식은 3박자 리듬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제 솔로 2집 앨범에서 그 리듬을 차용해 작업한 적이 있어요. 또 사물놀이를 듣기도 했고 1980 김덕수씨를 만나기도 했지요. 앞으로는 해 복 싶어요. 저는 문화간의 영향이라든지 유사점 등등에 관심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일본 음악과 아랍 음악의 공통점 같은 것이요. 한국과 일본 음악도 유사점이 있지만 반면에 다른 점도 많이 있지요.
-이번 앨범에 대해 좀 설명을 부탁한다면...
말씀드렸듯이 이번 작품 Untitled 01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기타, DJ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오케스트라 부분은 미리 작곡된 것이지만 다른 파트는 즉흥 연주를 한 것입니다. 물론 연주자들과 충분히 얘기를 했지요. 오케스트라는 다른 오케스트라나 실내악단에서 활동중인 연주자들을 모아 임시로 구성한 것입니다. 이번 투어를 위해서요. 모두 저보다 젊지요(웃음). 재미있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초등학교 때부터 YMO의 음악을 들었단 사실이예요. 클래식 연주자들은 겉으로는 진지해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어요. 그리고 음악 스타일은 일종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최소주의, 최소한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기계적(mechanical)이지는 않고 보다 유기적(organic)이예요. 아마도 주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스피리추얼(spiritual)해요. 또한 아마도 신 낭만주의자(neo-romanticist)에게 영향을 받은 면도 있어요. 신낭만주의라는 것이 '80년대 미니멀리즘 이후에 생긴 것이죠. 음악적인 의미에서 미니멀리즘은 음악은 모두 구조물(texture)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번 작품에는 분명히 멜로디가 들어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신낭만주의에 가깝다고 봐야죠.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 12월에 도쿄에서 콘서트를 끝냈어요. 7일 동안 9회 공연을 했죠. 제 피아노 연주였지요. 이번 프로모션 투어 이후에는 뉴욕에 가서 2월 11일날 콘서트를 갖는데 그건 1년 전에 했던 공연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겁니다. 그리고 나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새 영화 <뱀의 눈(Snake Eyes)>의 음악을 만들게 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하죠. 4월쯤이 되겠네요. 그리고 나서는 제 솔로 앨범을 만들게 돼요. 그리고 올해부터 일본에서 제 레이블을 설립하게 되기 때문에 5,6월 쯤에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프로듀스하게 될 거예요. 올해 후반부에는 오페라 작업을 할 거예요. 내년 9월 쯤이 완성 예정이예요.


MINI B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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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번 앨범은 'Grief', 'Anger', 'Prayer', 'Salvation' 등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무제 01(Untitled 01)'이라는 한 시간 분량의 관현악 작품으로 클래식과 이질적 요소를 결합한, 그의 과거의 시도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 즉, 표면적으로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위주지만 기타와의 협주, DJ까지 사용해 리믹스를 하는 등 과감한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앨범은 그의 특기를 살려 CD-Extra로 컴퓨터에서 화면을 띄워볼 수 있도록 하고있다.
그는 현재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애를 다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뱀의 눈(Snake Eyes)>의 음악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