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o people]
장르와 국경을 무너뜨리는 상상력
<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
유능한 음악가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어떤 타이틀이 필요할까? 앨범 판매량? 내노라 하는 이들과의 작업? 사카모토 류이치. 이 두 가지를 의식하지 않고도 음악인이 갈길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배우,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가 새 앨범을 들고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일본음악뿐 아니라 문화의 유입에 견고한 빗장을 걸어두고 있는 현실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내한은 서양 음악인들의 방문처럼 익숙하지가 않다. 그는 한국의 음악을 들어 보았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는지 기본적인 질문들을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을 보면…. 그는 불협화음이라는 뜻의 새 앨범 'Discord'의 홍보차 한국을 들렀다. 아프리카 난민들의 기아 현실에 대한 뉴스를 전해 듣고 구원(Salvation)이라는 명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가 하루 20여시간씩 일주일간 매달린 끝에 거둔 열매다.
"그들을 저런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한 우리 모두에게 구원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물음을 되새기게 되었죠. 분명 그들에게 나의 음악은 음식이나 의복처럼 직접적인 구원은 될 수 없겠죠. 하지만 구원에 대한 개념을 여러사람에게 던져보고 싶었어요."
클래식이라는 광활한 세계를 넘어 크로스오버 뮤직에 관심 있는 이들이 더욱 반가워할 만한 이번 앨범은 흐느끼는 관악기, 디스크자키의 스크래치, 전기기타까지 가세하고 있어서 크로스오버의 시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또한 '구원'이라는 제목으로 한 악장을 할애하고 있으며 평소 친분이 있는 전자음악가 로리 랜더슨,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가수 패티 스미스, 작가 바나나 요시모토와의 대담도 싣고 있다. 이런 용감(?)한 클래식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본의 한 라디오 방송국 'J-WAVE'에 제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프로가 있어요. 거기서 저의 음악샘플을 들려주고 그것을 이용해 청취자들이 한 곡을 완성해보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지요. 그 중 뛰어난 작품이 있었는데 한국인의 것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들어본 적도 있어요. 대체로 서양음악과 일본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이 들리더군요."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맡음으로써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게 된 그는 현재 영국작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생을 영화화한 'Love is Devil'의 음악을 작곡하고 있고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그는 분명 음악인으로서 만족할만한 명성을 얻었지만 배우, 모델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도대체 그의 아이덴티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저는 분명 음악가입니다. 하지만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감독, 디자이너들이 있어요. 나기사오시마 감독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인 안토니오 미로가 그 예인데 그런 이유로 그들의 작품에 출연하거나 모델로 서게 된 것입니다. 사진찍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요."
모든 음악적 장르와 지역이라는 벽을 허물어버리고 싶다는 그는 크로스오버 뮤직의 힘에 매우 경도된 듯했다. 자신은 낙관주의자는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음악을 통해 희망을 나누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희망'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조만간 실현될 그의 바람을 엿보게 된다.
취재/노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