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레코드 포럼이라는 아주 좋은 잡지(굉장히 많은 기사와, 유익한 정보^^)에서 발췌(거의 다;;)한 글입니다. 레코드 포럼 기자분께 감사드립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딱히 꼬집어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누구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케스트라를 콜라병에 밀어넣으려 하는 것과 같다. 작곡가, 영화 배우, 팝 우상, 패션 모델, 피아니스트, 현대 철학가 등 그를 지칭히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그러나, 사카모토 자신은 이런 수식어 모두를 거부한다.
"작곡가하면 너무 무겁고, 연주가라 하면 너무 가벼워요. 전 배우는 더욱 아닙니다. 단지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뿐이죠."
실제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The Last Emperor"와 , 그리고 일본에서 지난 12월에 개봉한 오시마의 최신 사무라이 영화 "Gohatto"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즉 공조작업으로 사카모토의 영화음악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사카모토를 이런 공동작업 아티스트로 한정 할 수는 없다. 이번 달에 그의 최초의 독주 앨범 "BTTB" (Back to the Basics)가 발표되기 때문인데, 빌보드지는 이를 두고 1999년 일본에서 출시된 앨범 중 가장 중요한 10장의 앨범 중 하나라고 평하였다. 사카모토의 "BTTB" 앨범에는 에디뜨 삐아프, 글렌 굴드의 영향 뿐 아니라, 라벨과 사티의 영향도 가미되어있다. 이런 절충주의는 중국 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오스카상을 수상한 "The Last Emperor"에서부터 말러의 영향을 받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98년 드릴러 "Snake Eyes"의 주제곡에 이르기까지 사카모토곡의 주제곡에 이르기까지 사카모토곡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저는 장르나 문화 간의 장벽을 파괴하고 싶습니다. 항상 서로 다른 것들을 접목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는 시각이 저에게는 자연스럽습니다. 이 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 것이 있는 그대로의 저입니다." 이런 그의 말처럼, 그는 참으로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소화해왔다. 일례로 그가 직접 출연을 하고, 영화음악까지 담당했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보자. 198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당시 한참 주가를 높이던 오시마 나기사가 메가폰을 쥐었고, 데이빗 보위가 주연을 맡을 만큼 화제작이었다. 특히 영국에서 많은 자본을 댔기 때문에 그 작품의 전세계 개봉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 즈음, 오시마는 일본측 주연 배우의 섭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문득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리더로 활약했던 사카모토에 생각이 멈추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출연을 의뢰했는데, 그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당연히 출연은 해주겠지만 그 대신 조건이 있다. 그게 뭐냐하면, 영화음악은 내개 맡겨라 하는 것이었다. 난데 없이 웬 영화음악이냐 싶었지만, 워낙 사카모토가 탐났던 오시마는 그 자리에서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때 바로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가 태어나리라고는 두 사람 모두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자기의 변신에 과감히 승부를 건 사카모토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결코 꽁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 "The Last Emperor"를 연출한 베르톨루치 감독과 작업할 때, 그의 요구는 너무나 광범위한 나머지 황당하기까지 했다. 무조건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살린 음악을 만들어내라는 것인데, 아무리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진 뮤지션이라 해도 그것은 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카모토는 꾹 참고 우선 레코드 숍에 달려가 중국음악 음반을 한 보따리 구입한다. 그리고 집에 가서 충분한 깨달음이 올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또 서적을 찾아서 공부하면서 도를 닦는다. 그런 결과물이 "The Last Emperor"의 영화음악을 사상 유래 없는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아카데미를 비롯, 그래미상, 골든 글로브까지 휩쓴 것은, 지금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닐수 없다.
이후 92년에 벌어진 바르셀로나 올림픽용 오프닝 음악 제의에도 그의 자세는 단호했다. 우선 지중해의 역사를 공부하고, 바르셀로나를 방문해서 구석구석을 누비며 탐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그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카탈로니아 문명을 알게 되었고, 가우디의 건축이 주는 경이로움과 몸푸의 음악이 가진 절묘함, 푸라 델스 바우스 댄스 그룹이 표현하는 전위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을 곧 바르셀로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낳았으며, 그 애정을 정성껏 오선지에 담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쪽으로 발전시켰다. 그렇다. 흔히 그의 음반 한 두 장을 접한 사람들은, 그저 타고난 감각이나 센스에 의존하는 아티스트로 그르 오해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마치 정밀 기계나 첨단 전자 제품을 만들어 내는 일본인 특유의 준비성과 프로 정신이 곧 그의 진면목인 것이다.
1952년 동경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신동의 재능을 보여 준 사카모토는 10살 되었을 때 벌써 베토벤과 모짜르트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1년 후 그는 서양 음악 작곡 공부를 시작했으며 학창 시절 테리 라일리, 스티브 라이히 같은 컨템포러리 작곡자들의 멀티 미디어 행사에도 참여했다. 대학에서 그는 전자 음악과 민족음악을 공부하기 이전에 먼저 신디사이저를 알았다. 컴퓨터 강의에 숨어 들어가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이렇게 배운 것을 음악에 적용시켜보곤 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사카모토는 칼 하인츠 스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 존 케이지등 컨템포러리 작곡가들에게서 주로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곧 음악을 즐기는 청중이 너무 적은 컨템포러리 음악 세계에 싫증을 내게 되었다. "저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실망을 느끼게 되었죠. 그때부터 다양한 팝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얼마 안가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와 함께 테크노 팝을 만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죠. 단지 내가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져야겠다고 생각했었죠."
총 11매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당시 일본의 인기 차트를 석궉했던 YMO의 음악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다음 몇 개의 용어가 떠오른다. 레이브(rave), 테크노, 앰비언트, 트랜스(trance) ... 얼핏 들으면 프로디지나 케미컬 브라더스 등이 각광받았언 90년대 말의 음악계가 생각나지 않은가? 그렇다. 당시 YMO의 출현이 가져온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고,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YMO의 성공이 그의 음악적 목표의 전부를 이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마디로, 인기 팝 스타로 숱한 팬 사인과 성원을 얻었음에도 그에게 일본 열도는 좁은 섬나라에 불과했다. 보다 큰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즈음, 나기사의 제의가 들어오면서 그는 자기 인생에 큰 도박을 건 것이다.
그가 서양 대중들에게 가까워진 계기는 오시마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잔인한 제2차 세계 대전 일본 전쟁포로 캠프 사령관으로써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기 배경으로 쓰여진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그의 주제곡과 함께 사카모토는 연기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제 연기는 너무 엉망이었죠. 편집을 다 끝내기 전 장면들을 봤는데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제가 기분 좋았던 것은 제 음악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카모토는 또 다시 베르톨루치의 "The Last Emperor"에 출연하기로 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영화음악으로 오스카 상, 그래미상을 수상했지만, 연기를 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한다. "연기에 대해서 자신있었던 적은 없었어요. 존경하는 베르톨루치 감독과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역할을 맡은 거죠. 감독의 요구사항이 아주 많더군요. "The Last Emperor"를 끝내고 2주 동안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이런 과거 경험에 비추어 사카모토가 이 후에도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의류 회사 Gap의 모델 일을 선택한 것과, 마돈나와 같이 팝 비디오에 출연하기로 한 결정을 사람들은 좀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카모토가 콘서트에서 라이트 쇼와 라이브 e-메일 방송을 할 때, 오늘날 대다수의 심각한 작곡가들이 보여주는 것 보다는 음악하는 작업이 더 흥미로울 수 있음을 느끼에 된다. 그러면, 이런 상업적인 재능을 갖춘 그는 자신이 금세기 음악가들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있을까?
"나는 고전음악을 공부했지만 고전음악을 20세기 어느 한가지 전통 음악의 일부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2000년에 들어와 그의 행보는 더 없이 바빠졌다. 지난해만 해도, 그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토시오 이와이와 조인트가 되어, 그가 비주얼 웍을 영사하는 사이 자신은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하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개최했는가 하면 로버트 윌슨과 함께 "The Day Before"를 제작, 99년도 링컨 센터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으로 등록시켰다. 이렇게 멋진 전위 예술가로 활동하는 틈틈이 개인적인 프로젝트도 진행시켜, 결국 두 장의 앨범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타이틀이 바로 "Cinemage"와 "BTTB"인데, 그 부분을 차례로 설명해보겠다.
먼저 "Cinemage"는 영화음악가로서 활동했던 지난날을 총정리하는 일종의 중간평가서 같은 앨범이다. 여기에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을 등게 되면, 그의 음악적 지식과 상상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또 유니크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일례로 "Merry Christmas..."에 수록된 'Forbidden Colors'를 보자. 원래는 일렉트로닉버전으로 발표되었지만, 그는 수차례에 걸쳐 연주 패턴을 달리했던 바, 피아노 솔로나 피아노 트리오 형식으로 소화한 것을 발견한 수 있다. 여기에 수록된 것은 데이빗 실비앙이 참여한 버전으로, 슈베르트의 가곡과 일본 민속 음악이 만난 것 같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Little Budda"에서의 느리고 우울한 분위기도 지적할 만하다. 마치 바버의 아다지오를 연상케 하는 장중함이 돋보이는 이 곡은, 동양의 신비로움을 가득 채운 묘한 여운이 인상적이다. 이런 감수성은 '폭풍의 언덕'에서 극에 달한다. 마치 차이코프스키와 엘가를 합쳐놓은 듯한 이 작품은, 사카모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낭만주의의 끝을 선욜에 담고 있다. 이렇게 로맨틱한 멜로디와 분위기를 엮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그의 센서티브한 감각에 큰 점수를 줘도 무방할 것이다.
반면 'El Mar Mediterrani'는 분위기가 일변해 스페인적인 이국 정서가 재미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드뷔시의 "La Mer"와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음악이 만난 듯한데, 마치 지중해 연안의 따스한 햇살과 낙천적인 기질이 선율 하나 하나에 묻어 나오는 것 같아 산뜻하기만 하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Replica'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주기적인 리듬, 반복적인 멜로디, 미니멀리즘 특유의 단순한 하모니... 그렇다. 이것은 순전히 전자 음악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몽환의 세계인데, 원래 키보드용으로 제작된 것을 이번에 고이치 스즈키가 관현악으로 편곡해서 들려주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에 미국의 전자 음악가 토머스 돌비가 관여했음을 알면, 얼른 이곡의 성격이 드러나리라 믿는다.
아무튼 자신의 영화음악을 모은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상에 있어서는 결코 쉽지만 않다. 대개의 영화음악 음반들이 영화 감상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나친 셀티멜털리즘이나 과장된 노스텔지어에 빠지기 쉬운데, 본 앨범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하나의 작품집으로서, 그 자체로 존재하고 또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BTTB"는 순수 음악인의 자세로 돌아간 사카모토를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영화음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큰 틀에서 감독이나 각본가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일종의 하청 작업이라면, "BTTB"는 그가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했던 컨셉트를 구현화했다는 적에서 강력한 개성을 발휘한다.
이 앨범이 갖는 특이성은, 작년 처음 일본에서 발매되었을 때의 열렬한 호응에서 발견될 수 있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본 작에 수록된 곡중에 싱글로 따로 발매된 'Energy Flow'가 일본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솔로 피아노 피스의 형태로 인기 차트의 넘버원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무려 8주간에 걸쳐! 물론 이것은 여태껏 사카모토가 발표했던 싱글 중에서 최초로 정상을 밟은 곡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싱글이 일본에서만 700만장이 나갔고, 앨범은 150만장을 넘었으니, 피아노 솔로라는 형태가 갖는 한계성을 단단히 극복한 흔치 않은 전례를 남긴 셈이 되었다.
본 앨범을 제작하기 전, 그의 의도는 아주 심플했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낱낱이 점검해서, 그 매력을 100% 끌어 내보자, 라는 착상으로 그는 다채로운 실험에 임했다. 단순히 건반을 치는 일 외에, 피아노에서 낼 수 있는 소리는 다 점검한 것이다. 심지어 'Prelode'와 'Uetax'에서는 현과 현 사이에 고무지우개 같은 물질을 집어넣어 음색을 변화시키는 작업도 했다. 아무튼 그 결과,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 하나로 상당히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호카이도의 맑고 청명한 겨울 아침에서부터, 에디트 피아프, 글렌 굴드의 브람스 연주까지, 참고로, 그는 늘 여행을 다닐 때마다 글렌 굴드의 브람스 연주 음반을 지참한다고 한다. 그 영향이 결국 본 작에 나타난 것이다. 그 외 라벨의 피아노곡에서 착상한 'Sonatine', 라틴 아메리카 음악에서 영향받은 'Bachata', 켈트족의 음악을 이용한 'Put Your Hands Up'등이 상당히 유니크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Tong Poo'라는 곡은, 자신이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에 헌정하는 연주로, 처음엔 피아노의 저음부를 연주한 후, 그것을 플레이백한 상태에서 고음부 연주를 덧붙이는 테크닉으로 제작되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손 4개를 이용해서 색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새로운 녹음 기술과 첨단 테크놀로지를 즐겨 썻던 YMO에 대한 그 나름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한다.
돌이켜 보면, 새 천년의 벽두에 자신의 앨범 두 장을 한꺼번에 발표했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그게 각각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너무나 많은 재능이 많아서 뭐 하나 뚜렷하게 업적을 남기지 못했던 많은 천재들과 달리, 이 두 장의 앨범 속에는 야무지고, 당찬 사카모토의 성실성과 재능이 빛을 발하고 있어서 흐뭇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21세기에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우리의 전기 의존도는 너무 지나칩니다. 20년이나 30년 후에도 우리가 전기를 사용할 수 있을지.... 저는 전기없이 음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가 다음 음반에서는 "어쿠스틕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테크놀로지를 배제한 스타일을 선보이게 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구 자원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사카모토의 부족함 없는 정열은 그를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게 할 것이다.
(레코드 포럼 2/2000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