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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ichi Sakamoto 2000

신주희 zoohere@hanmail.net│contrib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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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Ryuichi Sakamoto 2000]은 그 타이틀에 걸맞은 '21세기 베스트 앨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16곡이 수록된 본 앨범은 신곡 7곡 및 그의 대표곡들로 채워져 있음을 부클릿에서 밝히고 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단 두 장의 앨범에서 발췌한 편집앨범에 불과하다. 결국 200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신곡은 단 한 곡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 두 앨범이란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세 악기의 단촐한 구성으로 놀라운 효과를 보여준 [1996] 앨범과 1997년에 발매된 앨범 [Smoochy]이다. [Smoochy]는 아직 라이센스로 발매되지 않아서 어느 정도 신곡의 느낌을 주겠지만, 앨범의 절반이 넘는 아홉 곡은 이미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1996]의 수록곡들이다. 그리고 이번 편집음반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신경을 거스르는 곡은 모두 배제된 채 외롭고 울적하여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골라듣던 베스트 트랙들만 간택되었다. 이 정도면 왜 이 음반이 발매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올해만 들어 국내에서는 사카모토의 앨범이 세 장이나 나왔고([Ryuichi Sakamoto 2000], [BTTB], [Cinemage]), 내한공연도 있었으니 아마도 차세대 상권(商權) 주자로 낙점된 것은 아닐지.

이번 앨범은 세 가지 분위기를 갖고 사이마다 완급을 조절하는 미끈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1996]에 수록되었던 곡들,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팝,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실험적인 곡 "Rio"까지. 전체적으로 볼 때 낭만적이고 여린 감성을 표적으로 하고 있는데 여전히 [1996]의 절름발이 같은 기분이다. 좋은 음반의 전제는 흐름에 따라 들을 수 있는 곡과 감상자에게 생채기를 주는 음악의 혼성구조라고 할 때, [1996]이 함께 지녔던 양 요소 중에서 후자의 요소를 가진 곡들은 고스란히 삭제되었으니 말이다. 이는 성의 없는 선곡과 (아니면 지나친 배려?) 과대홍보라는 (21세기 베스트 앨범이라니? 사카모토의 영화음악은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가) 작위적인 냄새를 풍긴다. "Tango" 보컬버전이나 "A Day in the Park"는 기존 팝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며, "Rain"이나 "The Sheltering Sky", "High Heels" 등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앨범의 구성은 처음 트랙을 눌러 슬며시 마지막 곡까지 안착할 수 있도록 유려하게 꾸며져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유키 구라모토나 안드레 가뇽의 다른 버전 정도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앨범으로 사카모토는 새로운 이름의 뉴에이지 연주가 정도로 재생산되고 그 이미지의 고착화와 정형화를 갖게 될 것이다. 그동안 너무 속고만 살았는지 아티스트의 창작물을 함부로 훼손하고 난도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텍스트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상업주의적 횡포에 의하여 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분노를 갖게 된다. 온전히 [Smoochy] 앨범이나 발매할 것이지, 이미 발매된 [1996]을 가지고 왜 반씩 잘라 편집음반을 만들었는지, 그 심보 생각할수록 참 고약하다.

이런 점에서 "사카모토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앨범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사카모토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아니, 충분히 만족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독립된 곡의 완성도는 뛰어나고 여타 '환경음악'들이 추구하는 온전한 감정몰입과는 달리 변화와 불협화음이 곳곳에 배치되어 소소한 딴지 걸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새롭게 느끼고 만족한다면...누가 뭐라든 좋은 앨범이겠지. 20000515

수록곡

1. Tango(version Castellano)
2. Bring Them Home
3. Rain
4. The Sheltering Sky
5. Poesia
6. The Last Emperor
7. Merry Christmas Mr. Lawrence
8. Insensatez
9. Manatsu No Yo Ana
10. Rio
11. A Day in the Park
12. Aoneko No Torso
13. High Heels(Main Theme)
14. Bibo No Aozora
15. A Day A Gorilla Give A Banana
16. A Tribute to N.J.P